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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백 시







이백



자가 태백(太白)이고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이백의 어머니가 태백성을 태몽으로 꾸어 이백을 낳자 자를 태백이라고 하였다. 청련향(靑蓮鄕 = 사천(四川) 면주(綿州) 창명현(彰明縣))에 살았기 때문에 호를 청련거사라고 하였다. 그는 벗들과 어울려 사천의 아름다운 산천을 두루 편력하였으며, 이러한 경험은 이백 시의 바탕이 되었다. 26세 때에는 벼슬을 하기 위하여 사천을 떠나 동정(洞庭), 여산(廬山), 금릉(金陵), 양주(揚州), 낙양(洛陽), 용문(龍門), 숭산(崇山), 태원(太原) 등지를 돌아다녔다.

이 무렵 운몽(雲夢)에서 재상을 지낸 허어사(許圉師)의 손녀와 결혼하여 다음해 딸을 낳았다. 그 사이 당의 명장인 곽자의(郭子儀)와 친교를 맺기도 하였으며, 산동으로 옮겨 임성(任城)에 거주하였다. 이때 배정(裴政), 장숙명(張叔明), 도면분(陶沔汾) 등과 조래산(徂徠山)에 모여 종일토록 음주, 작시하며 즐겨 놀았는데, '죽계육일(竹溪六逸)'이라고 일컬었다.

이렇게 남북을 편력하는 동안에 이백의 시명(詩名)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한편 절강에서 알게 되었던 도사(道士) 오균(吳筠)의 천거로 이백은 당 현종의 부름을 받아 드디어 장안으로 갈 수 있었다. 그가 장안으로 가기 위해 문을 나서며 기뻐한 나머지 앙천대소(仰天大笑)하였다고 한 것을 보면 당시 그의 심정을 살펴 볼 수 있다. 현종은 이백에게 한림학사의 벼슬을 주었지만 장안에 머무는 3년 동안 자유분방한 생활은 여전하였다. 이 때에 태자의 빈객이었던 하지장(賀知章)은 이백의 시를 읽어 보고 "하늘에서 귀양 온 신선"이라고 찬탄하였다.

현종은 이백의 시재를 좋아하여 늘 그를 불러 시를 짓도록 하였으며, 이와 같은 처우에 이백은 불만이 커 날로 광기에 음주가 심하였다. 황제의 총신인 고력사(高力士)에게 신발을 벗기도록 하고 양귀비에게 벼루를 받쳐 들게 하였다는 등의 일화도 남겼다. 이처럼 성정이 오만한 이백으로서는 권신들의 비방, 질시 등을 참을 수 없고, 높은 벼슬의 대우도 해 주지 않아 장안을 떠나기로 결심하게 된다. 위와 같은 이유 이외에도 유랑 길을 올라 강남, 강북을 두루 돌아다닌 것은 더 이상 탈속적인 자유분방한 생활을 장안에서는 즐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낙양에서 두보를 만난 이백은 고적(高適)과 함께 양(梁)에서 노닐기도 하였다.

두보(杜甫)는 「기이십이백이십운(寄李十二白二十韻)」에서 "옛 한 미친 손이 있었더니, 귀양 온 신선이라 했네. 붓을 놓으면 비바람이 놀래고, 시가 이루어지면 귀신이 운다.(昔年有狂客, 號爾謫仙人. 筆落驚風雨, 詩成位鬼神.)"라고 하였다. 그는 귀신을 울릴 천재적 시인을 만난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하여 "술 취해 춤추며 양원의 밤을 즐기고, 사수의 봄을 노래한다.(醉舞梁園夜, 行歌泗水春.)"고 하였다.

그리고 두보와 헤어진 이백은 다시 유랑 생활을 하였는데, "만리 주인이 없고, 한 몸 홀로 객이 되어(萬里無主人, 一身獨爲客)"라고 고적한 심경을 노래하였다. 또한 "어느 해에나 돌아갈 것인가? 비 오듯 눈물이 외로운 배에 떨어진다.(何年是歸日, 雨淚下孤舟.)"라고 향수를 달래었다. 이 무렵부터 더욱 정치에 대한 불만이 커 정치인들을 풍자한 시들을 쓰기도 하였다. 안록산의 난이 일어났을 때 55세(천보(天寶)14, 755)의 나이로 안부인 宗氏와 함께 피난, 여산(廬山)에 은거하여 많은 시작을 하였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부인의 만류를 듣지 않고 이린(李璘 = 영왕(永王))의 막료가 되었으나, 이린(李璘)의 난이 실패로 끝나자 투옥되었다가, 야랑(夜郞 = 현 귀주(貴州) 동재(桐梓))으로의 유배 도중에 사면되었는데, 그의 나이 59세였다. 몸 붙일 곳이 없었던 이백은 당도(當塗 = 현 안휘(安徽) 당도(當塗))의 이양빙(李陽冰)을 찾아가 얹혀 살았다. 여전히 통음(痛飮)하는 날들을 보내다가 병을 얻어 사망하였는데 62세였다. 근처 채석기(采石磯)에서 물 속에 뜬 달을 건지려다가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는 뒤에 생겨난 전설이다. 이백의 일생은 참으로 평탄하지 않았다.









안록산의 난



안록산(安祿山)은 서역인이었으나 현종의 총신으로 평로(平盧), 범양(范陽), 하동(河東)의 절도사로 황하 이북의 군권을 장악하였다. 안록산은 현종이 향락에 빠져 있는 사이 재상 양국충(楊國忠)을 징벌한다는 구실로 난을 일으켜 낙양을 점령, 스스로 '대연황제(大燕皇帝)'라고 일컬었다. 현종이 성도로 급히 도망하는 도중, 마외(馬嵬)역에 이르렀을 때 장수들간의 분쟁이 발생, 양국충이 살해되고 양귀비는 목매어 자살하도록 하였다.



안록산은 장안을 점령하고, 현종은 성도에서 태자 이형(李亨)에게 양위하였으니, 그가 바로 숙종이다. 숙종은 곽자의(郭子儀), 이광필(李光弼)을 대장으로 기용, 반군을 공격하였다. 이때 반군의 내부분열로 안록산은 아들 안경서(安慶緖)에게 피살되고, 부장 사사명(史思明)은 당에 투항, 안경서를 살해함으로써 당군은 장안, 낙양을 수복하였다. 뒤에 사사명은 다시 반군을 이끌고 낙양을 점령하였으나 역시 아들 사조의(史朝義)에게 피살됨으로써 당은 낙양을 수복하였고, 사조의가 자살함으로써 전쟁은 끝났다. 이 난은 8년간 지속되었고 '안록산의 난'이라고 한다. <당>

이백은 정치적 큰 이상을 갖고 있었으나 꿈이었을 뿐 끝내 이룰 수 없었다. 하늘을 우러러 크게 기뻐하며 장안으로 향하였던 그였으나, 실망한 나머지 장안을 떠나 두루 천하를 떠돌아다니며 명산대천을 빠짐없이 찾았다. 그리고 자연을 통하여 체득한 진리를 시로 표현하였다.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를 예로 든다.






햇빛은 향로 비치어 안개 일고 있는데,

멀리 폭포를 바라 보니 앞내에 걸려 있구나.

날아 흘러 3천 척을 곧장 떨어지나니,

은하가 구천에 떨어지는 것 아닌가 의심스럽구나.



日照香爐生紫烟, 遙看瀑布掛前川.

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이백은 세속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여 유선(游仙)의 생활을 하였다. 그의 구선(求仙)의 마음은 진실하였으나, 도교를 믿지 않았고 도경을 학습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한 유랑자로서 과거나 미래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고, 오로지 현재의 인생의 쾌락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이백의 천성은 호쾌하여 사람들과 쉽게 사귀었다. 돈 쓰기를 꺼려하지 않고, 술을 좋아하여 가는 곳마다 친교를 맺을 수 있었다. 위로는 왕공, 귀족, 관리, 아래로는 주옹(酒翁), 낚시꾼, 승, 도인 등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귀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렇듯이 잡다한 교류를 가져 시의 내용 및 격조가 매우 다양하였다. 특히 유명한 하지장(賀知章), 맹호연(孟浩然), 두보(杜甫), 고적(高適), 장욱(張旭), 공소문(孔巢文), 오균(吳筠) 등과의 시교(詩交)가 대단히 깊었다. 이백에게는 술보다 더 좋은 것이 없었다. 두보의 「주중팔선가(酒中八仙歌)」에서 "이백은 한 말 술이면 시가 백 편, 장안의 술집에서 잠을 자네. 천자가 불러도 배에 오르지 않고, 자칭하여 신은 주중선이란다.(李白斗酒詩百篇, 長安城裏酒家眠. 天子呼來不上船, 自稱臣是酒中仙.)"라고 하였듯이, 술이 없으면 시가 없었다. 「월하독작(月下獨酌)(기일(其一))」을 예로 든다.






꽃 사이에 한동이 술을 놓고,

홀로 잔 기울이는데 대작할 벗이 없구나.

잔을 높이 들어 밝은 달맞이하니,

달과 나와 그림자가 합하여 셋이 되었네.

달은 원래 술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만 나를 따라 마신다.

잠깐이나마 달과 그림자를 벗삼아,

이 즐거움 봄까지 미치리라.

내가 노래하면 달빛도 춤을 추고,

내가 춤을 추면 그림자도 덩실덩실.

깨어서는 함께 어울려 기쁨을 나누지만,

취해서는 제각기 흩어진다.

언제까지나 세속을 떠나 사귐을 맺자고,

서로 기약하자 먼 은하수 다시 만나길.



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

月旣不解飮, 影徒隨我身.

暫伴月將影, 行樂須及春.

我歌月徘徊, 我舞影零亂.

醒時同交歡, 醉後各分散.

永結無情遊, 相期邈雲漢.






이렇게 혼자서도 술을 잘 마신다. 외로워도 외롭지 않게 술을 마신다. 그러나 속으로는 고독의 슬픔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백은 중국 시사에 있어서 제일의 천재 시인으로, 굴원의 뒤를 이어 낭만주의 시가의 꽃을 활짝 피웠다. 내용을 보면 영회(詠懷), 영사(詠史), 유선(游仙), 철리(哲理), 전원(田園), 산수(山水), 음주(飮酒), 회고(懷古), 등고(登高) 등 거의 모든 것을 다 포괄하고 있으며, 시정은 유창하고 거침이 없다. 「자야오가(子夜吳歌)(추가(秋歌))」를 예로 든다.






장안에 조각달이 걸렸는데,

집집마다 다듬이 소리 또닥또닥.

가을 바람 끊임없이 불어 오는 것은,

결국은 옥문관의 정일러니.

어느 날에야 오랑캐 평정할 것인가?

우리 님 전장에서 돌아올 터인데.



長安一片月, 萬戶擣衣聲.

秋風吹不盡, 總是玉關情.

何日平胡虜, 良人罷遠征.